강금주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던 홈부시 올림픽 공원 주변에는 맹그로브 숲이 있다.

시드니 하버 브릿지 밑을 지난 바닷물이 파라마타 강을 따라 구불거리다가 홈부시 만에 이르면 더 이상 흐르기를 멈추고 맹그로브 나무들 사이에서 짠 기운과 바닷내음을 풀어헤치는 곳이다.

맹그로브는 다른 나무와 사는 환경이 사뭇 다르다. 얼른 보아서는 갯벌에 뿌리를 내리고 짠 기운이 깊이 스며드는 바닷물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이 나무에 대한 상식을 뒤엎지만 그래도 맹그로브는 잘 살아간다.

맹그로브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늠름하게 그 만의 멋을 가지고 살아남는데는 맹그로브 나무의 평범하지 않는 뿌리가 바로 그의 비범한 삶의 해법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로브는 보통 나무와 다르게 4개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먼저 여느 뿌리처럼 몸통과 줄기를 땅에 붙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뿌리는 물 밖으로 대롱처럼 눈을 내밀고 산소를 빨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다른 뿌리는 몸에 축척된 소금기를 빼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른 뿌리는 옆으로 퍼져 나가 맹그로브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나무 하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처한 삶의 환경에 맞게 뿌리를 4개의 뿌리를 만들어 한 편으로는 소금기를 발산하고 한 편으로는 몸에 필요한 산소를 호흡하며 번식하는 모습에서 나는 가끔 위로를 받는다. 그래 나무라고 해서 꼭 하나의 뿌리로 햇살 좋고 토양이 좋은 곳에서 무리 지어 관상용으로 자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선 곳이 나무가 자라지 못할 소금기 있는 갯벌이고 그곳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면 나는 그곳에 맞게 나를 적응시키고 또 하나의 뿌리를 만들고 또 하나의 뿌리를 만들어서 네 개의 뿌리가 생긴다 해도 서로가 다른 역할을 하며 맹그로브나무라는 하나의 정제성으로 살아남으면 된다.

밖에 나와서 살려고 뿌리 내리기를 시도한 지 벌써 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밖에 나와서 사는 사람들은 항상 뿌리가 뽑힌 채 물을 건너와서 새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쩌면 언젠가는 더 튼튼한 모습으로 내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밀스런 희망 하나씩을 가슴에 숨기고 산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은 땅 두고 갯벌에 뿌리를 내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맹그로브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곳을 걸을 때마다 맹그로브 잎에 묻어있는 소금기를 조심스럽게 핥아 보며 조금은 짠 맛나는 위로를 받는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부딪치면 나는 그때 맹그로브처럼 내게 주어진 삶의 터에 맞게 이미 네 개의 뿌리를 가진 나를 만나게 된다.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단지 다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한다. 

                    [출처: 십대들의쪽지 231번째 이야기 中에서 http://www.teen4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