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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이 왜 복입니까?

재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 돈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과연 '돈에 대해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다운지?' 꼭 점검해 보아야할 문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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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복(福)

복이라는 주제는 생각보다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그리스도인들의 복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작은 틀로 바라보면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틀이 작으면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이번 호를 준비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 집: 복(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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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 것이 왜 복입니까? [1]

작성자 조영관
작성일 2005-05-04 (수) 12:54
ㆍ추천: 0  ㆍ조회: 3592      
IP:
약한 것이 왜 복입니까?

조영관(목사, CLM대표간사)


약한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우리가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사실 인간은 약할 때 많은 시험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약할 때 인간은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병들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이 들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가난하면 아이들을 마음껏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12장 8절에서 하나님은 말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네게 약함이 있느냐.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네가 알지어다. ”

바울은 육체적으로 몹시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큰 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혹자는 바울이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또 혹자는 바울의 시력이 아주 약했다고 말합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라고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육체적 장애 때문에 사역을 하는데 몹시 어려움을 겪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병 낫기를 위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주신 기도의 응답이 이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 말을 들은 바울은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며 자랑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다 잃은 것 같은데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절망인 것 같은데 소망이 있습니다. 분명히 바닥에 떨어졌는데 거기에 금 은 보화가 있습니다. 오히려 절망과 두려움 속에 새로운 빛과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신앙의 눈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이 약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고린도후서 12장 8절에서 10절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약함이 인간을 온전하게 합니다. 인간의 약함이 오히려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말합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도리어 기뻐하며 자신의 약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온전하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말하자면 그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이 이것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지라.”  여기에 보면 온전한 사람에 관한 정의가 나옵니다.
온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사람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인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약한 것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어렸을 때 한 번 아프고 나면 많이 어른스러워졌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왜 그렇죠? 약할 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 아프면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공부 좀 못해도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너무도 많은 욕심과 기대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불평하고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면 초조해 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이런 것들이 인생의 짐을 무겁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언제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들을 찾게 됩니까? 내가 약해질 때 비로소 찾게 됩니다. 약함이 욕망의 모든 꺼풀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냅니다. 죽을 만큼 심하게 아파 본 사람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이 약해지면 욕망의 찌꺼기들을 다 버리게 됩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에게 돈이나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마지막 고민은 그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병약하다고요? 내가 죽을 만큼 힘들다고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요? 이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내가 약할 때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나를 비우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채우십니다. 이것이 연합입니다.

내가 나를 비울 때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말입니다. 이 연합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인격을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이것이 복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둘째 약할 때 강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라.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해지기 때문이니라.”

 바울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그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이 어눌했다고 합니다. 외모도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복음의 열정 때문에 그는 수없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돌멩이로 맞고 몽둥이로도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히려 그가 자신의 이런 약함을 기뻐하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자신이 약할 그 때에 하나님이 가장 강하게 역사한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세상은 힘이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강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아주 약한 것 같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가장 강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하잖습니까.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니라.”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약할 때 하나님은 가장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약함을 상징할 때 보통 어린양을 예로 듭니다.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양은 천성적으로 순진합니다. 악의가 없습니다. 도대체가 사나운 데라고는 없습니다.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합니다.

사실 모든 짐승들은 자기 집을 찾아오지 않습니까? 개나 고양이는 물론 소도 자기 집을 찾아올 줄 압니다. 그런데 양은 자기 집을 못 찾아온다고 합니다. 양은 혼자서는 풀도 물도 찾아 먹지 못합니다. 목자가 데려다가 먹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양은 이렇듯 순진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을 파송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이 말은 제자가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양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리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악합니다. 내가 경쟁에서 지면 잡혀 먹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보냄을 받은 제자들은 양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금방 잡혀 먹힐 것은 뻔하지 않습니까?

만일 제자들을 사자로 보냈으면 어떠했을까요?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사자가 이리를 금세 사로잡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를 어린양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이것이 이리와 같은 세상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고 신비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양과 같이 나약한 존재가 어떻게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사람이 약해지면 자기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지할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을 그 때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제 하나님께서 싸우십니다. 나를 대신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약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다 약한 자들입니다. 권력과 명예도 없습니다. 부자도 아닙니다. 몸도 성치 못합니다. 열정이나 열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약할 때 힘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됩니다. 세상에서 무시를 당한다고요?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었다고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고요? 비빌 언덕 하나 없다고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면 우리는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셨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말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털 깎는 자 앞에 선 어린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말이 없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서도 말이 없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끝까지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끝끝내 말이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봅시다. 누가 승리합니까? 죽인 자가 승리합니까? 죽임을 당한 자가 승리합니까.

예수님은 유대인과 로마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로마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3백년이 채 안되어서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결국 로마가 기독교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린양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없이 죽어가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아주 무서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하다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약한 것이 결코 무능한 것이 아닙니다. 약할 때 오히려 강합니다. 약할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 힘과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기독교가 너무 세속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기독교가 별로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은 어린양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연약한 가운데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수모를 당하더라도 변명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이 땅에서 기독교인은 손해를 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명을 살립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가 어떻게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었나요? 총칼입니까? 아닙니다. 순교자의 피입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순교자의 피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증인들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온전해집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입니다. 그래서 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길입니다.


58.236.59.88 김경남: 이글읽다 눈물로 통곡을하며 나의약함때문에아버지게부르짖엇습니다 내게맡겨진시어머니가너무 밉고싫어 어찌할바를몰라 우울이몰려오는데 나에겐 시모를품을사랑이없기때문이며 예수님을사랑한다면서 날마다죽지못하는내가너무싫습니다 끝까지인내해야하는데 윗동서들이부럽고 시누이들이얄밉기까지하는이마음을주님의보혈로덮어주시길원합니다 24년간결혼생활동 안진정한자유를못누려 가슴이터질거같아서요 가끔씩시모를죽이고싶은생각도드는데 어찌하면좋습니가 이론은다아는데 실천이 얼마나어려운지 죽을껏같습니다 정말시모님이 차라리불쌍하게보여 그분의위선을안느끼고 안볼수있도록 내 눈과귀를 가려주시기를......용서하십시오 -[11/11-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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