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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복’과 ‘성경적 복’의 차이

재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 돈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과연 '돈에 대해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다운지?' 꼭 점검해 보아야할 문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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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복(福)

복이라는 주제는 생각보다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그리스도인들의 복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작은 틀로 바라보면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틀이 작으면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이번 호를 준비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 집: 복(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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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인 복’과 ‘성경적 복’의 차이
   약한 것이 왜 복입니까? [1]

작성자 김신정
작성일 2005-05-04 (수) 12:57
ㆍ추천: 0  ㆍ조회: 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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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복’과 ‘성경적 복’의 차이

한국 사람은 복에 대한 독특한 관심과 생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인정하듯이 한국 사람은 특히 “복”에 대해서 관심과 애착이 많다. 그래서  대문 손잡이로부터, 문갑, 은수저, 옷 무늬, 베개 모, 방석 등과 같은 데에다 복자를 새겨 넣는다.

이런 복에 대한 집착은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신앙과 연관이 있다. 그래서 무속적인 우상에게 복을 빌어서 복을 받거나 혹은 벌을 받는 것에 대한 생각이 한국 사람의 사고 속에 아주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또 이런 무속신앙은 불교나 유교 도교 등과 혼합되어서 발전했는데 이것은 결국 민족적 정서와 사고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무속과 연결된 전통적 사고에서는 이사를 갈 때 좋은 날을 정해서 이사를 하면 복을 받고 반대로 날이 좋지 못하면 복이 없거나 저주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이런 복이 있는 것과 복이 없는 것은 일시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고 모든 물건들에도 적용되고 땅에도 적용이 된다.

그래서 묏자리나 집터도 복과 연관이 되어있고 앞에서 말한 대로 베개나 옷이나 수저에도 ‘복’이라는 글씨를 써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들에 복이 있고 없음을 생각하는 습관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 복이 아주 실제적(물질적)이고 아주 현실적인 복의 개념을 가지게 하는 결과는 낳는다. 이것이 한국적인 복의 아주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전적으로 복(福)”은 “편안하고 만족한 상태와 그에 따른 기쁨. 좋은 운수. 복조(福祚). 행복”, 또는 “좋은 운수로 얻게 되는 기회나 몫”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양의 복을 칭하는 “good; fortune; blessing; luck; bliss; wealth (부); good (복리); mercy (은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서양에서 복이라고 할 때는 그것이 한국처럼 철저하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또는 양적인 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복이 이렇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만 강조하는 것은 다분히 한국적 무속신앙의 결과이고 한국 사람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복에 대한 관념이 성경적인 복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복에 대한 독특한 관념은 성경적인 복을 해석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왜곡해서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서 믿음과 신앙체계를 왜곡하는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오래 전에 어떤 가정을 방문했다가 아주 특별한 대화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집은 무속신앙과 유교의 뿌리가 깊은 집이었는데 그 집 부인이 드디어 복음을 받아들여서 남편에게 복음을 권하는 대화였다. 여러 가지 말로 기독교 신앙을 권했지만 그 남편이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는데, 그 중에 그 부인은 “우리가 이제까지 조상을 섬기고 그런 것들 섬겨봤는데 집안이 잘 되지 않았잖아요. 이제 복을 받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 바꿔볼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부인이 남편을 설득하기 위해서 한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한국적 복에 관한 관념과 기독교의 혼합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속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기독교가 자리를 잡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복을 빌던 성황당 나무의 자리에 십자가 나무가 자리를 잡고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성을 드리던 정화수나 불상의 자리에 성경과 기도가 자리를 잡는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고 또 비난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오랜 관념과 정서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당연히 일어나고 또 쉽게 극복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무속적 기독교의 모습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던 기성 종교들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혼합되는 과정을 모두 겪었다고 한다. 불교가 들어와서 무속이 결합된 한국적 불교가 되고 유교도 무속적 요소와 혼합되고 도교도 무속적인 모습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의 정서 속에 녹아 있는 무속적 뿌리가 너무 깊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혼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방증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도 어떤 부분은 한국인의 정서와 관념과 함께 세워질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복에 관해서는 이 무속적인 색깔을 지우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훼손하고 복음을 왜곡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제일 처음 복이 언급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2)는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아담과 하와의 복은 우리에게는 전혀 복으로 여겨지지 않는 복이었다. 그들은 에덴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옷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성경에서 두 번째 언급되는 복은 안식일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신 것(창2:3)것이다. 이것 역시 한국적인 복에 대한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성경에서 복에 대한  선명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는 에서와 야곱이 복을 두고 싸우는 장면에서도, 야곱이 결국 복을 쟁취하지만 야곱이 에서에 비해서 더 큰 물질을 가지거나 더 큰 권력을 가지거나 더 평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볼 때도 성경에서 말하는 복과 무속적인 복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산상수훈의 팔복을 보면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고 무속적인 정서 속에서 생각하는 복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팔복의 말씀 중에 배부를 것이라든지 기업을 얻는다든지 위로를 받는다는 말씀에서 한국적인 복의 개념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전혀 한국적인 복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다. 무속의 복의 개념에서는 가난이나 애통, 핍박 받는 상태 자체가 복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복에서 나타나는 복은 모두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을 보는 것,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 하나님 나라를 얻는 것” 등의 복은 결국 복은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천국)를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앞에서 말한 ‘배부를 것이라든지 기업을 얻는다든지 위로를 받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 자체’를 복으로 여기는 신앙이다.

성경은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복은 어떤 상태나 물질을 의미하기 보다는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의 복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보다는 영적이고 저세상에서의 복을 의미한다.

무속적인 복의 개념이 기독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 자체가 복이 아니라 그가 주시는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복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물질이 내려올 때만 복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의 복만을 추구하게 하여 신앙을 왜곡한다. 우리 기독교는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종교이다. 즉 천국을 믿고 천국에서의 삶을 소망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그러나 무속에는 내세의 삶에 관한 믿음이 없다. 따라서 복의 개념이 현세에만 집중되고 현실 세계에서 받는 복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잘못에 빠지게 한다.

기독교에서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전혀 말하지 않거나, 우리가 현세적 복을 구하는 것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은 말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현세적 복과 물질적 복을 말씀하고 또 주변의 많은 경험들에서 하나님을 믿고 현세적이고 물질적 복을 받은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지 무속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결코 그런 복을 받기 위한 것이 될 수 없고 그것이 성경적 복의 근본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속신앙에서처럼 하나의 사건이나 물질들에서 복과 비복을 찾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체가 복으로 여겨지고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이 계심을 인하여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 복되다고 고백할 때 우리의 신앙이 무속적 기독교를 벗어난 온전한 믿음과 신앙으로 서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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