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복지재단의 소식지인 '단비' 1+2호에 실린 글입니다.

 

내 자식을 위한 보험, 유산기증(글/정진홍,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요즘 세상은 하루도 돈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이른바 교환 가치가 있는 것이 돈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돈은 참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은 쉽지 않다. 피땀을 흘리고 때로는 자존심도 상해가며 겨우 쥘 수 있는 것이 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아낀다. 물론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들이 없진 않지만 그런 사람들은 공돈을 번 것이든지 아니면 철이 덜 든 사람이든지 둘 중 하나다. 대체로 여느 사람들은 돈 귀한 줄 알고 돈 아낄 줄도 안다.

그러나, 돈이란 끌어안고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돈은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잘 쓰는 일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한 대부분의 소시민들에게 돈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지혜롭게 돈을 쓰는 것은 나를 위해서도 내 자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돈을 잘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유산기증이다.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서 자신과 가족이 아닌 남을 위해 유산을 기증하는 것은 그동안 좀 특별한 시선을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3대 가는 부자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상속된 부는 영원은커녕 3대도 못간다.

유산 기증은 부를 사회에 영원히 남기는 방법이다. 이제 유산 기증은 카네기나 빌게이츠 같은 유명 기업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밥 팔고 국밥장사를 해 모은 전재산을 학교나 사회복지기관에 맡긴 바로 우리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일생 동안 고생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이 할머니들이 사회에 기꺼이 내 놓은 까닭은 무엇인가? 자신의 어려웠던 삶을 결코 자식세대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 혼자만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내 자식만 살 수 있는 세상도 아니다.

유산기증은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보장성 보험과 같다. 사회가 안정되고 편안해야 국민들도 안럭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손손손 내 자식들이 좋은 세상에서 잘 살기를 원한다면 내 유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이제 유산 기증이 '사회공헌'이 아닌 '사회환원'으로서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한다.

 

유산기증사례1 : 보험금 1억원을 사후 기증 약속한 이경환 씨

이경환 씨는 자신이 사망하거나 1급 장애인이 될 경우를 대비해 들어둔 종신보험으로 받는 보험금 1억원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금으로 재단에 기탁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픔으로 가족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 보험금을 선뜻 기부한 이경환 씨. 메트라이프생명보험을 통해 모교에 보험금을 기증한 한 후원자의 이야기를 들은 이경환 씨는 평소 생각만 해오던 나눔을 이번 기회에 실천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보험을 든다. 이경환 씨는 이웃을 위해 보험을 든 최초의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언젠가 매스컴에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동생을 돌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고 있는 소녀가장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생활에 급급한 나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오래도록 그 소녀가장이 기억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이 후원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어렵게 모은 전재산을 사회에 기증한 사례도 알고 있던 터였지만, 그 소녀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때 메트라이프생명 글로벌지점 신현정 씨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장 눈앞의 결과는 확인할 수 없겠지만 매월 제가 납입하는 보험료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가족들 역시 잘한 일이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이경환 씨가 보험금 기증서와 함께 보내온 편지 중에서

 

유산기증사례2 : 전재산 아파트 한 채 한사랑마을에 기증한 김계자 씨

재단이 운영하는 중증장애아동 요양시설 한사랑마을에서 보육사로 14년을 헌신한 김계자 씨. 지난해 11월, 그녀는 생애 동안 모은 전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한사랑마을에 기증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쳤다. 스무살이던 1972년 전북의 한 탁아소와의 인연을 계기로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한 그녀가 재단가족이 된 것은 1988년 한사랑마을에서 일하면서부터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아동들의 하루24시간을 챙겨야 하는 보육사의 힘든 일과. 그녀는 단 한번도 그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보육사들이 근무를 꺼리는 휴일이나 명절에도 엄마처럼 아이들을 챙겼다. 그런 그녀는 3년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청천벽력 같은 선고에도 아랑곳 않고 한결같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2002년 6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자 그녀는 홀연히 퇴직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될까봐 연락마저 끊고 투병생활을 했다. 지난 11월 26일 한사랑마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을 남기고 그녀가 떠난 사실이 알려진 것도 재단에 전해진 아파트 기증 문서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그녀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오십 평생을 다하고도 남은 사랑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