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다 어려운 사람은 돕고 살아야지

“내가 조금 애쓰면 한 끼 식사하는 사람이 두 끼 먹을 수 있는데 이 일을 안 할 수가 없지.”
몸은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하는 김순태 할아버지(83세, 광진구 중곡3동).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 1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집에서 조금 먼 거리까지 자전거를 끌고 가 폐지를 수거한 지가 벌써 15년째다.

여든을 넘긴 지 3년이 지난 김 할아버지도 알고 보면 정부의 도움으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다.
“내가 남의 도움으로 사니 나도 미력이나마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지.”
그게 사람 사는 방법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당신이 끔찍한 가난을 경험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고 말한다.
김 할아버지가 오전 1시면 집을 나서는 일은 1년 364일 계속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는 이 일을 1년에 딱 이틀은 쉰다. 추석과 설날 당일.
이렇게 할아버지가 잠을 아껴 모으는 폐지는 1Kg에 80원 정도 받는다. 이 액수도 그나마 할아버지의 선행을 아는 폐지업자가 넉넉하게 계산해 주는 거란다.
할아버지는 당신이 수거한 폐지를 중곡3동장의 배려로 구(舊)청사 한켠에 있는 창고에 쌓아둘 수 있어 좋단다.
“처음에는 모아 온 폐지를 보관할 때가 없어 애 먹었어.”
주변이 지저분하다고 이웃에서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동사무소에서 창고를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 김순태 할아버지.
“한 달에 두 번 모아 놓은 폐지를 동사무소 차량을 이용해 가져다 팔지.”
1트럭 가득 채우면 평균 6-7만원 정도의 수입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할아버지가 애써 일을 해 모은 돈은 전액 불우한 이웃들의 먹거리로 재생산되어 그들에게 돌려준다.
“쌀과 라면, 기타 부식 등을 사 갖고 가서 전해주면 모두들 고마워 해.”
고마워하는 그들의 마음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일에 더욱 탄력이 붙는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삶이 넉넉해 보인다.

● 만취한 사람 깨워 집에 보내는 일도 내 일이지

김 할아버지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면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집을 나설 때 항상 1~2만원은 주머니에 챙겨갖고 다녀.”
유흥가 주변엔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로 길거리에서 그냥 자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는 사람을 깨워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되는데 그중엔 주머니에 교통비가 없는 사람들도 있어”
그래서 그가 택시 기사에게 직접 돈을 주어 그들을 집에 갈 수 있게 해 주는 일도 그의 업무 중 하나이다.
“요즘같이 추울 때 한 데 잠자면 큰일 나지...”
그렇게 파지를 모으고 술에 취해 자는 사람을 깨워 돌려보낸 뒤 그가 집에 돌아오면 보통 오전 4-5시가 된다고 한다.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바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들고 동네 청소에 나선다.
“우리가 이리로 이사 오고 난 뒤에 동네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
그는 할아버지 덕분에 동네가 깨끗해졌다며 인사하는 이웃들의 덕담이 듣기 싫지 않은 눈치다.

● 사업부도 후 65세부터 시작한 이웃돕기의 선행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여 한 때는 제법 살았지.”
그렇게 운영하다 부도가 나 당장 갈 곳 조차 마련이 되지 않는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된 김 할아버지는 쉽지 않은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때 생각했지.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의 의미를. 그 이후부터 뭔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어.”
그는 그런다. ‘재물이 있어야 도와주지’ 라는 말은 별 실효가 없다고.
그래서 그는 부도 후 65세부터 이 일을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평생 업으로 삼던 일에서 손을 떼거나 소일삼아 일을 할 시기에 김 할아버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김 할아버지는 지난 1월에도 일을 한 번 냈다.
사업할 때 알고 지내던 후배들로부터 의류 협찬을 받아 작은 바자회를 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틀 동안의 바자회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 서로 돕기 일일찻집’에 기부했다. 이 일일찻집은 중곡3동의 9개 직능단체가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이같은 할아버지의 정성은 중곡3동 직능단체와 동사무소를 통해 청소년 가장들에게 전달되었다.

이웃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김순태 할아버지의 뜻을 아는 이병호 중곡3동장은 올해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우와 홀로 계신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바깥나들이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김 할아버지가 동사무소와 공동으로 올 4월부터 1년에 4번 정도 60여명의 중증 장애우와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나들이를 통해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주는 그런 프로젝트이다.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조차 거부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또 다른 사랑 공세를 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손에 쥔 재화는 넉넉하지 않지만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보다 부자라고 이야기하는 김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사탕 하나 지어주고 허허롭게 웃던 우리네 할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