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당에 놀러 오세요" 녹지를 나누는 사람들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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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황금동 초원길 주택가에 살고 있는 김두성(11)군은 아침 마다 등교길에 '동네 공원'을 지난다. 상가 건물에 살고 있어 집에 마당이 없는 김군은 그나마 '동네 공원' 덕분에 계절 마다 꽃잎 색깔이 변하는 걸 느낄 수 있다. 김군은 꽃을 자세히 보고 싶으면 직접 '동네 공원'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남의 집 마당이라 구경하면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가도 주인 아주머니는 웃으며 쳐다보시기만 하시더라구요."

'동네 공원'은 다름아닌 이석호, 박두석, 김영화 씨가 사는 집 마당. 초원길 주택단지에서 작은 공원 노릇을 하는 이 세 집은 수성구 황금동에서 명물로 통한다. 2미터가 넘는 담장이 늘어선 주택가에 세 집만 나란히 담장이 없기 때문이다. 30 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나무 울타리가 경계를 표시하고 있을 뿐 그 어떤 담장도 찾아 볼 수 없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는 라일락 단풍나무 등 10여 그루가 보기 좋게 심어져 있다.

대구시 곳곳에 이런 담장 없는 집들이 늘고 있다. 96년 처음 시작된 '담장허물기' 운동은 99년부터 시민 사회단체가 참여하면서 명실공히 민관합동이 하나된 시민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대구시와 시민단체 등 137개 단체가 연합한 '대구사랑시민회의'가 사업을 맡고 있다.

 
대구 황금동 초원길 주택가에는 담장을 허문 세 집이 이웃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지금까지 관공서, 주택, 아파트 등 250여 곳 1만2800 미터의 담장이 헐리고 6만9000 평의 공간이 녹지로 변했다. 담장을 허물고 싶은 단체나 개인이 신청을 하면 시민회의에서 타당성을 심사한 후 시비로 300만원을 지원한다. 올해 하반기에도 25곳이 신청해 10곳을 선정, 현재 설계 작업 중이다.

시민회의 관계자는 4일 "담장허물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범죄우려 등으로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라며 "인센티브 제도까지 시행하는 등 꾸준히 설득 과정을 거쳐 담장 허물기가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범죄예방을 위해 인근 파출소와 협조, 순찰을 강화해 담장 없는 집의 경우 현재까지 단 한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99년 집 담장을 허문 남창수(대구 중구 삼덕동)씨는 "집이 소방도로 네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담을 허물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교통사고가 났지만 담을 허문 후 사방이 잘 보여 사고가 날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황금동 김영화씨는 반대하는 부인과 아들을 설득해 담장 허물기에 동참한 경우다. 김씨는 "잘 가꾸어온 정원을 혼자만 볼 수 없어 담장을 허물기로 결심했다"라며 "이웃 아주머니들과 더 친해지고 좋은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2000년 김씨가 담을 허무는 것을 보고 같은 성당 교인인 이웃 이석호씨 가정도 동참해 황금동 명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대구가정법원과 서구청, 서부경찰서가 담장을 헐어 가로공원이 만들어졌다.(위) 대구교도소의 담장 허물기는 교도소 이미지를 친근하게 바꿔주었다.(아래)
ⓒ미디어다음 김준진 
 
대구의 담장허물기 운동은 권위적인 법원, 경찰서, 교도소까지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했다. 대구가정법원은 지난해 담장을 허물어 딱딱한 법원 이미지를 벗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지역은 지난 96년 전국 관공서 가운데 최초로 담장을 허문 서구청과 지난 2000년 전국 경찰서 중에 최초로 담장을 허문 대구 서부경찰서가 인접해 있어 '담장 허물기 가로공원'이 탄생했다.

실제로 이 곳은 큰 관공서 세 곳이 몰려 있고 버스 정류장까지 있어 교통량이 많지만 길가에 접한 벤치와 나무숲 덕분에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구교도소(소장 황신행)도 지난 2000년 달성군과 예산을 합해 외곽 담벽을 허물었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100 평 규모의 공터에는 면회객을 위한 주차장과 장미 수 천 송이로 화단을 만들었다. 대구교도소 관계자는 "전과 3범 이상만 수용하는 대구교도소의 이미지가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대구의 이런 변화는 지난 해 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작년 8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환경정상회의에서는 우수사례로 꼽혔다. 서울, 부산, 인천, 울산 등지의 행정기관과 시민단체들의 견학도 줄을 잇고 있다. 이제 담장 허물기라는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기세를 떨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