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 10년 동안 독일의 빌레펠트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기간에 그곳의 한국인교회에 출석하면서 귀한 신앙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제가 먹었던 말씀의 꼴들과 직분을 수행하면서 체득하였던 교훈들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글의 독자들께서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하였거나 하시고 계신 분들이라 하므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글의 소재로 사용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빌레펠트시의 한국인들은 독일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그 수가 적으며 대부분이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빌레펠트에는 교단교회가 아닌, 천주교신자들까지도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초교파 교회로 세워졌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빌레펠트 교회(http://members.tripod.lycos.co.kr/bielefeldkg)의 평신도들은 빌레펠트 교회가 초교파 교회라는 점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빌레펠트 교회를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은 초교파 교회라는 이유로 이 교회의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평가들을 근거로, 저는 빌레펠트 교회를 “하나님의 실험교회”라고 정의해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실험교회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고 제가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대로 붙여본 말입니다.  

빌레펠트 교회의 “실험적인” 측면을 설명하기 전에 저는 먼저 교회를 “제도로서의 교회”와 “신앙고백으로서의 교회‘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교회의 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두 축입니다. 제도로서의 교회를 형식(Form)의 축으로 본다면, 신앙고백으로서의 교회는 내용(Inhalt; Content)의 축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공의의 하나님은 형식의 측면을, 사랑의 하나님은 내용의 측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것이 또한 이 내용을 보호하기 위한 “형식”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의 그 귀한 사랑(내용)을 보전하기 위하여, 죄인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그 사랑을 끊임없이 고백할 수 있기 위하여, 엄위하신 공의의 하나님을 동시에 고백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저는 “제도로서의 교회”와 “신앙고백으로서의 교회”라는 두 측면이 기능적인 조화관계에 있을 때, 교회가 교회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빌레펠트 교회를 실험교회라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 하나는, 이 교회는 “제도로서의 교회”의 측면이 미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즉, 일반 교단교회와는 달리 교회의 존립과 직결된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여 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과 교회의 연대성을 지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원로가 없이 서리집사들이 제직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훈련을 받으신 분들이 유학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교단과 같은 모습에서 나타나는 “제도로서의 교회”가 성경에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한국의 교회가 지나친 분열을 보임에 식상한 나머지 “제도로서의 교회”를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제도로서의 교회” 또한 하나님을 신앙하는 우리의 선배 신앙인들이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을 힘입어 만들어 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열 두 지파를 두셨으며,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두셨고,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남은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유다의 후임(맛디아)을 뽑아 열 둘이라는 숫자를 채웠던 것이나, 이 열 두 제자의 이름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열 두 기초석 위에 쓰여 있는 것 등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매우 중요하게 볼 수 있게 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것입니다. 그밖에도 사도행전 15장에서의 예루살렘 공의회의 존재와 역할은 오늘날 교단의 그것과 상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교회가 세속화 이후에 최근 수백 년 동안에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 오면서 교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데에는 바로 이 제도의 힘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초교파 운동이나 그 밖의 새로운 운동을 벌인 거의 모든 단체나 운동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은 하나의 또 다른 교단으로 자리 매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한국교회의 분열을 그리 미화해서 보자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현실과 하나님이 교회와 정통교단에 주신 현실적 권위를 완전히 부인하는 쪽으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올바른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단교회냐 초교파 교회냐의 문제는 우월의 문제나 상호배타성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양식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할 것입니다.  

방금 말한 점에 근거하여 본다면, 특수한 형태의 교회를 빌레펠트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의 제도적인 측면이 약하다는 것은 “신앙고백으로서의 교회”의 측면에 더 절실하게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결과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에게 주어진 대명제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빌레펠트 교회는 순수하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서려는 노력을 한시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빌레펠트교회 홈페이지의 공동체 소개란에 있는 “빌레펠트교회 신앙고백"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매주 구역모임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일년에 한두 번씩은 수양회를 개최하여 - 다 큰(?) 어른들이 율동과 연극을 하면서 - 하나님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선교와 구제에 대한 비전을 잃지 않기 위하여 힘에 겨울 정도로 노력을 하였습니다. 

둘째로, 이러한 헌신을 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가 없는 교회에서 30대의 나이에 장로님들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거쳐간 많은 분들이 가시는 곳마다 직장에서는 신우회를 조직하여 경건생활과 선교에 진력하시고, 또 모교회나 새로운 교회에서 - 때로는 새신자반부터 시작하여 - 역할을 찾아 나가시는 것을 듣거나 볼 때마다 저는 조그만 씨앗 하나가 많은 새들이 쉴 수 있는 거대한 나무로 성장해 가는 말씀의 역사를 봅니다. 빌레펠트 교회는 이를 위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교회인 것입니다. 

세째로, 빌레펠트 교회와 교인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가운데, 교단교회들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독일에서의 신앙생활 이후에 한국의 교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여, 신앙의 침체를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보다는 독일에서의 훈련을 토대로, 마음속으로 결정한 출석교회에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며 봉사하며헌신하여야 합니다. 사실 율법적인 눈으로 보면, 한국교회의 과오들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래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벽마다 기도의 단을 쌓는 교회는 한국의 교회들뿐입니다. 새벽여명부터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그 시간이 있기에 이 혼탁한 탁류같은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 옆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가 교회답지 못 할수록 하나님의 바른 정신을 가진 성도가 교회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점점 더 비중이 커진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사와 성령의 감동하심을 가지고 어쩌면 교회 안에서부터 선한 양심과 희생으로 선한 싸움을 해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각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귀한 비전(공동체정신의 회복이나 크리스찬 업그레이드이든지)을 교회를 등지고 한다면, 운동의 장점을 상쇄하는 부작용을 감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의 귀한 소망은 교회 안에서 혹은 교회연합의 큰 틀 안에서 추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약 10년 전 빌레펠트 대학의 한 구석진 빈 공간(Zwischenraum)에서 아무 것도 없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던 빌레펠트 교회는 하나님의 실험교회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교회를 통해, 이 “실험교회"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을 견지하기를 바라시며, 이 소망을 유학생활 이후에도 한국의 출석교회에 순종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추구해 나가기를 또한 바라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실험교회를 통하여 보여주신 비전들을 빌레펠트교회 출신의 교우들이나 그밖에 하나님을 순수하게 신앙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가 전심전력하여 추구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러한 노력의 최종점에는 예비하신 면류관이 있을 것입니다. 면류관을 받기 전에 우리는 이미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것이며, 업그레이드 된 크리스찬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